전자서명

송신자의 신원을 보증하고 메시지의 위변조를 방지하는 수학적 방패.

— 현대 암호학의 기초 교과서

결국 한국에서는 'nprotect' 설치를 강제하기 위한 아주 훌륭한 핑계이자 명분책으로 전락했다. 공동인증서 비밀번호 특수문자 섞어서 10자리 이상으로 바꾸라는 창 뜰 때마다 모니터 부수고 싶다.

1. 개요

서명자의 신원을 보증하는 전자서명(Digital Signature)은 서명자가 해당 전자문서에 서명했음을 증명하는 수학적 메커니즘이다. 기존의 종이 인감이나 친필 서명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비대칭키 암호화 기술의 결정체로, 현대 웹 브라우저 보안의 근간인 HTTPS부터 블록체인의 비트코인 송금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전자서명이라고 하면 십중팔구 공인인증서와 그에 수반되는 수많은 ActiveX 떡칠의 악몽을 떠올린다.(...) 공인인증서라는 제도 자체는 죄가 없으나, 이를 액티브X와 EXE 보안 프로그램 강제 설치라는 희대의 악습으로 구현한 보안 솔루션 업체들과 금융기관들이 원흉이다.1

2. 동작 원리: 비대칭키의 마법

기본적으로 공개키 암호화 방식을 정반대로 뒤집어 사용한다. 일반적인 암호화가 '아무나 잠그고(공개키), 나만 열어본다(개인키)'라면, 전자서명은 '나만 잠그고(개인키), 아무나 열어본다(공개키)'이다. 송신자가 원본 문서의 해시값을 자신만의 통제권인 개인키(Private Key)로 암호화하여 문서에 첨부하면, 수신자는 송신자의 공개키(Public Key)로 이를 복호화하여 원본 문서의 해시값과 대조한다. 만약 단 한 글자라도 위변조되었다면 해시값이 완전히 달라져 서명이 깨진다.(...) 이 심플하고도 완벽한 수학적 메커니즘 덕분에 제3자의 개입 없이도 무결성(Integrity)부인방지(Non-repudiation)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2

3. 한국형 전자서명의 흑역사: '공인'의 굴레

한국에서는 1999년 전자서명법 제정 이후 공인인증서 제도를 도입했다. 문제는 당시 웹 표준이 정립되지 않아 브라우저 자체적으로 공개키 알고리즘을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브X를 들이부었고, 이것이 무려 20년 가까이 한국 IT 생태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종양으로 자라났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자 액티브X 대신 '키보드 보안 앱', '백신 앱'을 강제로 여러 개씩 깔아야만 뱅킹이 가능한 앱 지옥이 열렸다. 결국 2020년 '공인'인증서 제도가 전격 폐지되고 간편인증 서비스들이 대거 등장하며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이름만 공동인증서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하드디스크 NPKI 폴더를 뒤적거리는 틀딱 시스템은 살아 숨 쉰다.

4. 관련 밈 및 드립

4.1. NPKI 폴더 영혼의 백업

과거 USB 메모리나 하드디스크의 C:\Program Files\NPKI 폴더를 통째로 압축해서 메일 '나에게 쓰기'로 보내두던 눈물겨운 백업 라이프를 말한다. 공인인증서를 재발급받는 귀찮은 과정(공동인증서 재발급 시 보안카드와 OTP 번호를 틀리면 은행 지점에 직접 기어 들어가야 하는 대참사가 터졌다)을 피하고자 전국의 수많은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이 NPKI 폴더를 무슨 가문의 비기마냥 USB에 고이 모셔두고 다녔다.(...)

4.2. 공동인증서 비밀번호 입력기 렉

보안을 한답시고 마우스 매핑을 무작위로 바꾸는 가상 키보드 화면에서 키를 하나 누를 때마다 사양이 아무리 좋은 PC라도 순간적인 버벅임이 발생하는 기적의 현상이다. 사실상 사용자의 인내심을 테스트하여 인격 수양을 돕는 종교적 수행 도구라는 설이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5. 여담

  • ActiveX의 원죄: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기능을 확장하기 위해 만든 규격이었으나, 전 세계에서 유독 대한민국만이 이 기술을 국가 표준 보안 인프라로 채택하여 수십 년간 전 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 비밀번호 유효기간 1년의 압박: 보안상의 이유로 매년 인증서를 갱신하도록 강제하는데, 이 때문에 매년 1회씩 전국민이 공인인증서 갱신 절차라는 정기 연례 고문을 당해야 했다.
  • 사라지지 않는 NPKI: 윈도우 OS의 사용자 홈 디렉토리 깊숙한 곳(AppData/LocalLow 등)에 짱박혀 있는 NPKI 폴더는 맥(Mac)이나 리눅스로 이주한 유저들에게도 금융 업무를 보기 위해 가상 머신을 켜야 했던 결정적인 원흉 중 하나였다.

6. 관련 문서

각주

  1. 정부에서 액티브X를 걷어내라고 압박을 가하자, 보안 업체들은 브라우저 외부에서 실행되는 'exe 설치형 프로그램'을 대안으로 내놓는 창조경제를 선보여 전 국민의 혈압을 올렸다.

  2. 단, 개인키를 피싱 사이트에 스스로 바쳤거나 해커에게 탈취당한 경우에는 수학이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